
사진은 고등학교 때부터 찍었다. 전문적으로 찍는 것도 아니고 주기적으로 카메라를 들고 밖으로 나가는 것이 아니라 실력은 그렇게 좋지 못한 수준이다. 그냥 다소 무겁지 않은 취미로 사진을 찍고 있다. 오늘은 나름 오래된 필름 사진이라는 취미가 주는 매력에 관해 이야기 해보고자 한다.

카메라를 들면 평소에는 무심하게 지나갔을 장면들을 더 세심하게 볼 수 있다. 걷는 속도는 느려지더라도 길을 걸으며 마주치는 것들은 더 이상 사물이 아닌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닌 존재로 다가온다. 평소에 걷던 길과 내가 자주 머무는 공간이 주는 익숙함이 더 이상 평범함이 아닌 새로움으로 다가온다. 어느 날은 평소에 눈길도 안 주던 장판에 햇살이 따스하게 드리운 모습이 이뻐 보여서 카메라와 필름을 바닥에 두고 찍었다.

필름 사진은 결과물을 확인할 수 없고 또 필름의 가격 자체도 비싸기 때문에 디지털과는 다르게 쉽게 셔터를 누르지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찍으려는 대상에 시선이 더 오래 머물게 되고 시간이 더 걸린다. 시선이 머무는 시간만큼 더 대상에게 가까워진 느낌이 든다. 어느 정도 가까워졌다고 생각이 될 때 숨을 참고 셔터 버튼을 누른다.
찰칵하는 기계음과 함께 셔터가 닫히고 1초 남짓한 피사체의 상이 필름에 맺힌다. 이송 레버를 밀어낸 뒤 다음 사진을 찍을 수 있게 준비한다. 아마 이게 낚시에서 말하는 손맛일까? 이러한 과정이 주는 맛이 있다. 시간은 다소 걸리더라도 내가 사진을 직접 찍는다는 느낌이 있다.
이 불편하고 느린 과정이 나에게는 즐거움으로 다가온다.
필름 사진은 디지털과 다르게 바로 확인할 수 없다. 사진을 다 찍은 필름을 약품 처리를 통한 현상을 통해 결과물을 얻을 수 있는데, 사진을 찍고 바로 현상소에 필름을 맡겨도 하루가 지나야 결과물을 얻을 수 있다.
현실적으로는 큰마음을 먹지 않으면 현상소를 갈 일이 없기 때문에 길면 반년 넘게 필름 현상을 미루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바로 결과물을 얻을 수 없다는 점 때문에 아이러니하게도 필름 사진을 찍고 있다.
보통의 기억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흐릿해진다. 하지만 필름 사진으로 담은 기억이라면 그 기억은 형태를 잃게 될 때쯤 사진으로 다시 돌아온다.
타지 생활을 하다 오랜만에 살던 곳으로 돌아온 친구를 만난 것처럼, 시간이 지나면 지날 수록 더 반갑고 소중하게 느껴진다.
필름은 불편하고 느리다. 그렇지만 그래서 더 애착이 간다. 케케묵은 필름을 꺼내서 햇빛에 비춰본다. 이건 언제 찍은 사진인지 다시 기억을 되짚어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