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에는 사실 러닝을 많이 안 하고 있다. 한 때는 5일 빼고 러닝을 할 정도로 러닝에 푹 빠져 있었는데, 오늘이 이번 년도 첫 러닝이다. 다시 뛰기 위해 마음을 정리할 겸 러닝에 대한 글을 써보려 한다.
러닝을 시작한 거창한 이유가 있지는 않다. 러닝화 한 켤레와 몸만 있으면 그냥 달릴 수 있다는 간단함 덕분이었다. 아! 그리고 가벼운 내 체중 덕분이기도 하다 몸이 가벼울수록 더 유리한 운동이라 생각했던 것도 있다. 물론 엄청난 영향을 주는 것은 아니었다. 군대에서는 그렇게 달리기가 싫었는데, 막상 건강을 생각하다 보니 뛰게 되었다. 마침 집 근처에 하천도 있었고, 잘 뛰다 보면 서울까지 다녀올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처음에는 3km를 6분 페이스로 뛰는 것도 어려웠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어느새 21km까지 뛸 수 있게 되었다. 위에서 언급한 서울 즉, 한강 합류부를 찍고 집으로 돌아올 수 있는 거리다. 그동안 마라톤 대회에도 다섯 번 정도 참가했다. 하지만 모든 일이 그렇듯, 러닝도 한동안 쉬다 보니 처음 시작했을 때의 실력으로 돌아간 듯하다.
나는 빠르고 오래 뛰지는 못하는 것 같다. 나와 같이 러닝을 시작했던 친구가 있다 나보다 느렸지만, 어느덧 나보다 훨씬 잘 뛰고 있다. 하지만 빠르고 오래 뛰는 것이 꼭 잘 뛰는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자기 속도로 꾸준히 나아가면 그게 잘 뛰는 것 아닐까?
조급함 내려두기
마라톤에서는 조급해할 필요가 없다. 내가 아무리 빠르게 달리거나 느리게 달린다 해도, 언제나 내 앞이나 뒤에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다. 중요한 것은 누군가를 앞지르기 위해, 혹은 뒤처지지 않기 위해 뛰는 것이 아니다. 오직 어제의 나보다 더 나아지기 위해 달리는 것이다. 그렇지 못하더라도, 다음 기회를 준비하면 된다. 러닝은 나 자신과의 레이스일 뿐, 타인과의 경쟁이 아니다. 비교하지 않고 내 길을 묵묵히 나아가는 것이라 생각한다.
환경보다 중요한 노력
러닝을 하다 보면, 다양한 나이와 차림새의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그중에서도 이색적인 러너들은 백발의 노인부터 유모차를 끌고 나온 러너, 심지어 맨발로 뛰는 러너도 본 적이 있다. 나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아 이 사람 러닝하는구나?’의 차림새로 뛴다. 좋은 스포츠워치, 신발, 옷, 에너지젤 모든 것이 갖추어진 상태로 러닝을 한다.
작년 11월 호기롭게 42km 풀 마라톤을 신청하고 중간에 포기해 결승점으로 버스를 타고 복귀하기 전까지는 이런 내 모습이 부끄러움으로 다가올 줄 몰랐다.
결승점에 버스를 타고 도착해, 오만상을 하고 힘겹게 결승선을 통과하는 러너들을 한 5분 동안 넋이 나간 채로 쳐다보고 있었다. 그중에는 내가 앞서 말한 이색적인 러너들도 있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문득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각종 사치스러운 장비를 갖추고도 정작 포기한 나는, 그저 "빛 좋은 개살구"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것을 갖추었는지 못했는지 그것은 중요치 않다. 중요한 것은 뜻이 있고, 그 뜻을 이루기 위해 꾸준히 노력해 왔느냐는 점이었다.
꽉 묶은 신발 끈 때문에 잘 들어가지 않는 신발을 억지로 신는다. 발을 꾸겨 넣으면 금세 익숙해지지만, 뛰고 싶지 않다는 마음만큼은 어쩔 수 없다. 꾸역꾸역 솟아오르는 감정을 강제로 집어넣고 출발을 위해 집 근처 하천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음악을 틀고 천천히, 그렇게 첫 발을 내디딘다. ‘오늘은 어떤 것을 배울 수 있을까?’
